사랑하는 이의 상실을 겪는 너에게

2025-02-26

다시는 밤이 없겠고, 등불이나 햇빛이 쓸데없으리니. - 요한계시록 22장 5절

이 글이 네게 마법처럼 닿길 바라며 편지를 써.

이 시간을 겪고 있지 않길
간절히 바라지만
우린 상실이 있는 세계에 태어났으니까.


절대 상상할 수 없던 그가 부재한 세상이 성큼 와버렸어.
네 희망 따윈 사소한 푸념이라는 듯이.


어디서 들었어, 장례식엔 망자의 영혼이 앉아서 지켜본다고.
통곡하는 가족을 보며 마음아파 한다고,
그래서 쉽게 떠나질 못한다고.

영혼이란거 믿지도 느끼지도 않는 나였지만 혹시나 싶어 장례식 때 꾹꾹 참았어.


혼자 펑펑 울때면 아빠가 방 구석에 앉아 나를 가만히 지켜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어.
아빠 방에서 한참 울다 나왔는데, 현관 센서등이 팍 하고 켜졌어.
그 순간, '아빠가 여기 있어?!' 라며 함박웃음 지었지 뭐야.
그때 나에겐 그런 믿음이라도 필요했나봐.


아빠의 불이 희미해져 갈때, 약속을 했어. '나, 진짜 진짜 잘 살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이제 쉬어. 가끔 찾아와서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 보고 가.'

그 약속 지키기에 바로 돌입했어.
슬퍼하는 모습 보면 속상해 할까봐, 나는 강하다고 씩씩하다고 수십번 되새겼어.

운동도 다니고, 가끔은 친구들도 만났어. 그리고 말하고 다녔지,
물론 슬프지만, 아빠같은 사람이 아빠였어서 감사한 마음이 더 크다고.


그리고 나서, 한참 지나서야 시작됐어.
끝없는 가라앉음이.
심연의 깊이와 어두움을 알아챌 새도 없이
힘들다는 생각이 떠오를 틈새도 없이
계속 가라앉았어

어쩌면, 편안했을수도 있어.
슬픔과 버거움이 가장 자연스러워서 편안함이란 단어가 떠오를 정도로 말이야.

몸이 한참 아팠어. 힘이 하나도 없고 잠을 엄청 많이 잤어.

꿈도 매일 꿨어.
이건 너무 끔찍해서 현실일 리가 없다고, 깨어나야 한다고 악을 쓰다가
진짜로 꿈에서 깨어나는 아침을 한동안 맞이했어.


다들 자신만의 방식으로 애도를 한다지.
내가 아는건 내가 겪은게 전부라, 나눌 수 있는 걸 나누어봐.

너는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어?
어쩌면 너의 시간이 나의 시간과 교차점이 있어
조금이라도 이해 받는 기분을 느꼈다면 좋겠다.

혹은 많이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몰라.
그렇더라도 말로 담을 수 없는 그 황망함, 사무친 그리움, 뒤늦게 떠오르는 후회,
멍하니 보내 버리는 그 하루하루 만큼은 알 것 같아.


슬픔이 떠난 이에 대한 사랑의 증표라 느껴져 그를 놓아주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가 네가 행복하길 바란다면, 그를 놓아주는게 사랑이겠지.


그에게 약속해줘, 씩씩하게 잘 살아내겠다고. 그는 분명히 듣고 있을 테니까.
네 곁의 좋은 사람들과, 앞으로 만날 소중한 인연들과, 행복하게 살아갈거라고 약속해줘.
그가 안도감에 미소 지을 수 있도록 말이야. 사랑하는 이가 잘 지낼거라는.

어쩌면 머리로 수 백번, 수 천번 되뇌였을 거야. 사랑하는 이를 보내주는 것도 사랑이라고. 슬픔은 사랑의 증명이 아니라고. 내가 매일같이 우는 모습을 보면 그가 얼마나 속상해 하겠냐고. 수백번의 다짐이 무색하게 어김없는 무너짐이, 두려움이, 무기력함이, 혹은 분노가 얄미울거야.

그렇다면, 오늘 밤, 마음에 어둠이 찾아오면 말을 내뱉어봐. 어떠한 말이라도 상관없어. 그리고, 일어나는 일이 일어나도록 놔둬.

너는 소중하니까, 반짝이니까, 네 안에 가두고 있는 어두운 것들을 풀어 주어.


나는 그 것들을 풀어주고 나서야 회복할 수 있게 되었어.

조금씩 빛을 되찾았고, 아빠에게 했던 약속을 드디어 지킬 수 있게 되었지.


조금 기운이 생기면,
떠난 그를 위해 기도를 해줘.
그의 영혼이 아프지 않기를. 좋은 곳에서 평안하기를.


기도를 하면,
기도의 대상이 행복하고 건강하길 바라음이 우주에 전해져
여행을 하다가 결국 그 대상에게 닿는데.

나는 널 위해 기도해.
상실이 있는 이 세상엔 슬픔이 많아. 그러기에 네 마음을 헤아려 줄 따듯한 마음도 많아.
오늘 밤은 눈 감고 나의 마음을 느껴주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