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2024-08-03

이 글에 대해.

아빠 투병기 일기장이다. 길고 아픈 글이다.

아빠와의 마지막 추억이 내가 잊는 순간 영영 사라지는 것이 두려워 남긴다. 이 아프고 소중한 기억이 영원했으면 하고 당신이 증인이 되어줬으면 한다.

아마 내 나름의 애도 방식일테다.

August

2024.08.03 토요일. The day our worlds turned upside down.

췌장암4기래,,,한국 잠시 들어올수있나?


브라질에서 막 돌아온 참 이었다.

나의 까무잡잡해진 피부, 햇빛 알러지에 일어난 피부 트러블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서핑, 다음 휴가, 명상, 독일어 코스, 내 생일 파티 영상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내 인생이 얼마나 멋지고 앞으로 어떻게 멋지게 살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꽤 오래 전부터 내 머릿속은 온통 이런 생각뿐이었다.

Then, my world turned upside down.


처음엔 속이 텅 빈듯 아무 생각도 안들었다. 멍하니 한참 카톡을 바라보았다.

나: 다음 주에 바로 갈게. 의사는 뭐래?
아빠: 겁나는얘기,,,,의사들은 ,,최악을 가정하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던데,,,모르겠어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창문으로 쏟아지는 쨍한 햇빛이 너무 잔인해 블라인드를 치고 한참 누워 있었다.

This is too unfair. It's too cruel. Not him, please.

삶의 대부분을 아빠와 떨어져 지내며 그리워 했는데. 이정도로 강력한 계기가 생겨야 함께하는 우리 부녀. 난 참 못났다.


2024.08.03 - 04 주말.

토요일 아침, 소식을 들은 후 한참 침대에 자빠져 훌쩍거렸다. 안되겠다 싶어 자전거 끌고 나가서 자전거 타면서 질질 짰다. 지겹게 울고 기운 차렸다. 이럴 때일 수록 정신 똑바로 차리자. 삶은 어쨋든 계속 되니까.

주말 내내 짐 싸며 과학 문헌을 뒤적였다. 항암 식단, 영양, randomized control trials 등은 잔뜩 뒤졌지만 췌장암 4기 환자 예후는 차마 찾아보지 못했다. 제목만 봐도 심장이 쿵 떨어져서. 이미 대충 알고 있는데 과학자들의 차가운 확답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드디어 아빠랑 시간을 잔뜩 보낼 수 있겠어. 이제라도 이런 기회가 주어져 다행이다.


2024.08.06 화요일. 한국 도착.

나도 이런데 아빠는 얼마나 힘들까.

일단 공항에 마중 나온 아빠가 내 기억속의 기운 넘치고 멀쩡한(?) 아빠여서 마음이 놓였고, 아빠 곁에 힘이 되주고 요리도 해주는 분이 계셔 안심이다.

아빠는 자전거 타고 헬스 하던 건강하던 사람으로 살다가 '이렇게 건강한 분이 왜 오셨어요?' 했던 병원에서 갑자기 시한부 환자가 되었다며. 2주만에 인생이 확 뒤집혔다고 담담히 얘기하는데. 나는 가만히 앉아 애꿎은 손톱만 뜯으며 '아... 그러게. 정말. 힘들었겠다.' 라는 맥 빠진 목소리를 중얼거릴 수 밖에 없다.

무서움, 혼란, 인정, 분노, 슬픔이 다 함께 뒤섞여 왔다 갔다를 반복해 사는게 사는게 아니었다고 담담히 얘기하는 아빠. 명치가 막혀오고 위가 조여와. 나도 이렇게 무서운데, 아빠는.


췌장의 꼬리의 악성 신생물.

아빠의 진단명이다. 아빠 안에 생겨난 세포 반란군, 우리의 삶을 통째로 뒤집어 놓은 그 것. 질병코드 C25.2.


2024.08.08

처음에 갔던 병원에서 최대 3개월 선고를 받았다고 한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자친구분과 서울삼성병원에 갔다. 어젯 밤 잠도 못 자고 아파하는 것 같았다. 앞으로 올 시간이 두렵다.


2024.08.09

어제 간 병원에서 비교적 젋고, 근육도 있고, 체력도 좋으니 3개월은 아니라고, 한번 열심히 항암 해보자 했다고 한다. 14일 부터 입원.

마음이 더 편해보여 다행이다.


...

밤 열한시 넘은 밤. 집에 혼자 누워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고 안 받았다. 곧바로 아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어떤 여자분(아빠 여자친구분)의 (앞으로 지겹게 듣게 될) 떨리는 목소리였다. 아빠가 의식을 잃었다고, 아직 아무도 뭔지 모르는데 인천국제성모병원으로 와야할 것 같다고.

급히 가니 응급실에 누워있는 아빠는 자기 이름도, 지금 어디인지도, 무슨일이 있었는지도, 지금이 무슨 계절인지도 전부 모른다고 한다. 나를 가르키며 '누군지 알겠어요?' 묻자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뇌경색이 온 것 같다고 한다.

이 날 밤은 잘 기억이 안나는데, 펑펑 울면서 처음 뵌 아빠 여자친구분 (이하 아줌마) 얘기를 한참 들었다. 함께 있다가 아빠가 갑자기 말을 못해서 바로 병원에 대려온 거라고. 낮에 젓가락질 잘 못하는 증상이 잠깐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살짝 원망했다. 나라면 바로 병원 대려갔을텐데.

아줌마 말로는 아빠가 나 한국 온다고 엄청 좋아했고, 그래서 일부러 공항 마중 간 거라고 한다. 아빠가 나 엄청 자랑스러워 했고, 독일 지금까지 안온건 장거리 비행 공포증이 있어서 라는걸 이제야 알게됐다. 그거 불안증 약 먹으면 되는데. 아빠는 항상 자기 아픈거, 불편한거 나한테 절대 얘기 안하지.

아줌마는 자긴 아빠 없인 못 산다며, 아빠한테 그냥 같이 세계 여행하고 스위스 캡슐에 들어가자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아빠가 안된다고, 넌 남아서 애들 결혼하는거 보고 오라고 했단다. 참 아빠도. 나한텐 결혼 소리 단 한번도 안해놓고 속으론 그런 생각 하고 있던거야?

몇 시간일까, 기다린 후 받은 진단은 우측 전두엽 뇌경색. 코로나. 폐혈증.

뇌과학을 공부하고 뇌졸증 랩에서 일도 했으면서 아무것도 못했고 못한다는게 원망스러웠다. 암이 뇌경색 위험을 높인다는걸 미리 알았다면 뭐가 달라졌을까.

응급처치를 받고 진정된 아빠를 보러 갔다. 나를 알아본다. 말도 알아듣는다. 다만 브로카 실어증이 왔는지 말을 3 단어밖에 못한다. '응', '글쎄', '그러니까'.

나 알아보고 내 말 알아들으면 됐다. 다행이야..


2024.08.10 토요일

중환자실에 자리가 없어 계속 응급실 격리실에 있는다. 아줌마는 매일 밤을 거기서 지새고, 나는 낮 동안 아빠와 있는다.

아빠가 어제보단 말을 좀 더 한다. 내 말은 다 알아듣는것 같다.

아빠와 얘기를 한참 나눴다. 아빠는 내 질문에 응 아니를 표현하고 나는 스무고개로 아빠가 하려는 말을 알아 내는게 전부였지만. 내가 아빠 말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무교인 아빠가 초등학교 때 잠시 교회를 다녔다는 것도 알아냈고 (아빠 가족한텐 비밀이라는 것도), 아줌마와 10년 넘게 만났다는 것, 아줌마 아들은 나보다 어리고 아빠도 만난적 없다는 걸 알아냈다. 말을 하고 싶은데 안나와 답답할때 마다 '아우 시발 조가타' 라고 한다. ㅋㅋㅋㅋㅋ 자기도 어이없는지 고개를 저으며 헛웃음을 짓는다. 아빠 운전할 때 빼곤 욕하는거 들은적 없는데. 왠지 욕하는 아빠가 웃기다.

아빠와 오후를 보내고 아줌마와 교대해 집에 와 잠을 청한다.

혼자 잠드는 집은 무섭다.


2024.08.16

그 동안 아빠는 언어치료를 시작했고, 눈에 띄게 살이 빠지고 체력이 약해졌다. 그치만 기분은 좋아 보이고 말도 조금씩 늘어간다.

오늘 시작 예정이었던 항암은 폐에 물이 남아있어 19일로 미뤄졌다.


2024.08.19

항암치료 시작. 아빠는 기분이 좋아보인다. 말도 잘하고 기운도 있다. 으쌰으쌰 우리 아빠 머찌다

아줌마는 말이 너무 많아서 귀에 피가 날 것 같다. 덕분에 아빠와 아줌마의 TMI 스토리를 잔뜩 들었다.

두 분은 아줌마가 인생의 풍파를 맞고 (?) 인생 밑바닥에 있을 때 처음 만났다. 우울증 약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는 우울에 먹지도 씻지도 않고, 문득 아파트에서 뛰어 내릴까 하는 충동에 맞서 싸울 때 였다. 걱정하는 친구가 불러내 억지로 나간 자리에 아빠가 있었다. 머리 헝크러지고 퀭한 눈으로 밥만 허겁지겁 먹는 아줌마가 아빠는 안쓰러웠는지 주말에 등산 가자고 불러냈다. Long story short, 아빠와 주말마다 등산 하다보니 어느 새 우울해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빠가 자기를 죽음에서 구해줬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아줌마가 아빠를 구해주길.


2024.08.22

아빠가 항암 부작용으로 너무 힘들어 한다.

몇 보 걷기도 힘들어 하고 눈도 제대로 못 뜬다. 딸국질을 계속 한다.


2024.08.23

오늘은 훨씬 좋아보여 다행이야.

아빠가 너무 힘들어하면 집 근처 응급실로 대려가 영양제 맞고, 조금 나아지면 다시 집 오고.. 의 반복이다. 덕분에 항암으로 이미 약해진 아빠 혈관은 괴롭힘을 있는데로 당하고 양팔은 피멍으로 가득하다. 아빠의 아픔을 나눠갖고 싶다.


2024.08.24 - 30

내가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그래, 지금 얼른 걸렸다 낫자.

먼저 안부 물어오는 몇 안되는 이들. 진심어린 말 한마디 건네주는, 늘 여기 있으니 언제든 연락 주라는 친구들. 고마워.

답장 그리고 연락은 잘 못해, because all I've got to say is either a lie (that I'm doing fine) or something difficult. But I appreciate it with all my heart. It means a lot to me.


2024.08.30 여전히 코로나

아빠 의사선생님 뵙는 날. 오늘쯤이면 코로나 낫지 않을까 했는데, 아직 양성이다.

어제 아빠는 딸국질이 너무 심하고 힘이 없어 아줌마가 집 근처 응급실에 데려 갔다. 검사 결과 폐는 깨긋하고, 백혈구 수치 높고, 몸무게도 57kg로 늘었다고 한다. 아빠가 맞은 1차 항암제를 보더니 이건 되게 강한 항암제라 젋고 건강한 사람들에게 많이 쓰는 거라고 한다. 의사가 아빠를 건강하게 본 것 같다고.

저녁 6시가 넘어서도 연락이 없다. 초조해진다.

곧 전화가 왔다. 차가 너무 막혀서 막 집에 도착했다고. 아빠 오늘 컨디션은 굿 이고, 유전자 검사 결과는 다음 주에 나올거고, 혈소판/빈혈 수치 떨어진건 흔한 부작용인데, 자연적으로 올라오는지 나흘동안 살펴보고 다음 항암을 결정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아빠가 허리가 안아프다고 한다. 의사 선생님이 "허리 안아프세요~?" 하니까 아빠가 "아 좋아요" 라고 했다고 한다. 저 목소리가 상상이 가서 웃기다. 뭐가 아 좋아요야, 아빠는 정말. ㅋㅋ 의사 앞에선 안아픈 척 하기 1등.

마음이 좀 놓인다. 언능 코로나 이 따위 것 낫고 아빠 보러 가야지!


SEPTEMBER

2024.09.05

항암 부작용이 나아지질 않는다.

아빠가 언어치료 가기 싫어 죽겠다고 때쓴다. 아줌마가 억지로 보낸다. 너무 힘들어 한다. 아빠가 그저 편히 쉬었으면 하는 마음과, 그래도 회복을 위해 힘써야지 하는 마음이 충돌한다.

집에서 옆에 앉아 있는데 열심히 무언가를 말하려 한다. 늘 하듯 스무고개로 알아낸다.

나: .... 아빠 주식계좌?
아빠: 으으응
[...]
아빠: 그리고 지혜가 다 (손짓)
나: 내가 다 관리 하라고?
아빠: 으응. 지혜한테 다.. 다 해.
나: 응 내가 맡아서 관리 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마.
아빠: 그래. 나도.. 넘겨줘야해. 그치? 안되겠어, 넘겨줘야해.

몇 년 전 아빠는 시골에 땅을 하나 샀다. 아빠가 좋아하는 산 앞인데, 평생 모은 책 가지고 북카페 차려, 손님이 오던 안 오던 그냥 강아지 당나귀 키우며 살자 했다. 그 집 지으려 모아뒀던 주식 계좌 돈이다. 넘겨줘야한다는 말을 애써 못 들은 척 했다.

2024.09.06

아빠가 힘들어한다. 어떻게 아빠 마음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줄 수 있을까. 내가 되게 웃긴 사람이었음 좋겠다.

2024.09.08

숨 쉬는걸 힘들어한다. 항암 3차까지 (1세트) 하고 더 이상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한다.

2024.09.11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두려움은 무지에서 비롯된다..

2024.09.12

아침에 온 떨리는 목소리의 아줌마 전화. 아빠 심장이 문제다.

초음파 검사 결과, 심장 판막 4개 중 2개에 심한 염증이 있다. 판막이 열리고 닫힐 때 마다 염증이 승모근과 횡경막을 치며 폐부종을 일으킨다. 또한, 판막이 제데로 작동하질 않으니 피가 역류한다.

초음파를 봤다. 판막에 염증이 긴 꼬리같이 달려있다. 열리고 닫힐 때 마다 체찍마냥 휘둘린다. 매 심장 박동이 아빠를 더 아프게 한다.

이래서 숨 벅차했구나. 그저 항암 때문에 적혈구가 줄어 그런거라 생각했는데.


유일한 치료는 개흉술이다. 몸통을 가슴부터 옆구리까지 L자로 갈라 갈비뼈를 열어 멈춰놓은 심장을 꺼낸다. 판막 재건 수술을 하고 다시 몸통에 집어 넣어 뛰게 하고 몸통을 꼬매고 뼈를 붙인다.

건장한 사람도 힘들어하는 대수술이다. 아빠 같은 '말기 암 환자'는 전신마취 후 못 깨어날 가능성도 크다고 한다. 아직 아빠 의식이 있고 의사소통도 되니 남은 시간 잘 보내는데 집중하는게 좋을 것 같다고 의사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말씀하신다.

췌장암 4기, 뇌경색, 심내막염, 폐부종.

세상이 아빠의 운명을 결정해 놓고 나에게 통보하는 것 같다.

아빠도 수술 하기 싫다고 한다. 연명치료도 싫다고. 우리 몇 년 전 그런 얘기 했었지, 연명치료는 산 사람 욕심에 아픈 사람 괴롭히는 잔인한 짓이라고. 나도 아빠도 연명치료 안 받을 거라고. 근데 이게 이렇게 금방 현실이 될 줄은 몰랐어.

그래, 남은 시간은 아등바등 하지 않고, 허구한 날 주사 꼽아 팔에 가득한 피멍자국 더는 늘리지 말고, 좋은 순간으로 최대한 가득 채우자.

아줌마는 차라리 지금이 지옥이면 좋갰다고. 자기가 아빠 똥오줌 다 받을테니 최대한 오래 살아있기만 하면 좋겠다며 울먹인다.

아빠가 너무 아파해서, 계속 고통스러울 거면 차라리 쉬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건 잘못된 걸까.. 아픈거 보는 내 마음이 힘들어서 그러는 걸까. 더 살길 바라는 마음도 욕심인거면 우리가 바라는 건 전부 우리의 욕심인걸까

그냥 난 아빠가 아파하지만 않았으면 좋겠어.


2024.09.13 금요일. 서울삼성병원

나: 의사한테 말 들으니까 어땟어?
아빠: 그냥 그랬어,
나: 그냥 그렇구나 했어?
아빠: 응.
나: 무섭진 않고?
아빠: 응 안무서워.
나: 그럼 됐어.

수술을 안하면 더 이상 입원이 안된다는 삼성병원에 퇴짜를 맞아 퇴원해 집에 왔다.


2024.09.14 토요일. 아빠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바로 다음 날 아침, 또 다시 떨리는 목소리의 아줌마 전화다. "우리 119 타고 인천성모병원 가고 있으니까 너도 얼른 와."

내가 집에서 자는 동안 아빠는 아줌마네서 밤새 숨 벅차 했다고 한다. 앉았다 일어났다, 창문을 열아달라 했다가 닫아달라 하고, 안절부절 못했다고. 그러다 숨 못 쉬어서 죽을 것 같다고, 살고 싶다고 했다고.

그래도 일주일은 괜찮을 줄 알았는데. 추석은 같이 보내고 싶었는데. 온전한 하루도 허락되지 않네.


"선택할 것도 없어요. 이거 안하면 안돼요." 의사선생님의 강경한 첫 마디.

서울삼성병원에서 안 하기로 했던 개흉술을 하자 한다. 수술을 안하면 숨 못 쉬는 고통, 그리고 심정지 뿐이라 한다.

숨 못 쉬는건 너무 괴롭다.

내가 결정을 해야 한다. 너무 어렵다. 미칠 것 같다.

환자 상태가 위급해서 빨리 결정해야 한다고 한다.


수술 성공 가능성을 물으니 60-70% 라고 한다. 여긴 처음 온 병원이니까 아빠 상태를 잘 몰라서 그러는거 아니야? 그래도 의사 선생님을 믿어 보기로 한다.

숨 못 쉬는건 너무 괴로우니까 차라리 심장을 고치자. 심장 수술 후 한참 항암치료 못하겠지만, 암 고통은 진통제를 쓸 수 있다. 숨 못 쉬는 것 보단 덜 고통스럽지 않을까. 만일 수술 중 잘못되더라도 숨 막히는 고통은 없을거야. 깨어나고 회복해서 잠시 더 우리와 함께 한다면 소원이 없겠어.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12 시 수술 시작. 대략 6시간 걸리지만 더 걸릴 수도 있다.

대기실에 아줌마, 고모, 그리고 동생과 앉아 수술 끝나길 기다렸다. 나란히 앉아있는 나와 동생을 보고 고모가 '둘이 안닮았어~ ㅎㅎ' 한다.

고모와 아줌마가 우리 얼굴에서 아빠를 요리조리 찾는다. 얼굴은 동생이 더 아빠얼굴인데, 얼굴형은 지혜가 아빠 얼굴형이야. 계란형에 두상은 이쁘거든. 아줌마 왈, 근데 지혜는 아빠랑 성격이 똑같아. 내가 지혜 보고 깜짝 놀라서 아빠한테 말했잖아, 어쩜 그리 똑닮았냐고. 지혜는 아들로 태어났어야 했다고.

나는 아빠를 닮았다. 우린 더욱 닮아간다. 아빠 키가 나만큼 줄었다. 우린 같은 시야로 세상을 본다. 아빠는 점점 몸무게가 준다. 아직 내가 7킬로 정도 덜 나가긴 한다. 나의 그닥 이쁘지 않은 손도 아빠를 쏙 빼닮았다. 우린 귀도, 발도 똑 닮았다. 책에 대한 애정도, 추리물을 좋아하는 것도, 연명치료에 대한 생각도 같다. 나는 물을 좋아하고 아빠는 산을 좋아하지만 말이다.


5시간 반 만에 연락이 왔다. 수술 끝났고요, 5층으로 오시면 의사 선생님이 설명해주실 거에요.

지쳐보이는 의사 선생님은 경과를 지켜봐야 하지만 일단 수술은 잘 끝났다고 하신다.

'특별한 이벤트' 없이 잘 끝났어요. 심장에 염증이 엄청 많았어요. 이미 작은 염증들은 떨어져 나가 혈관으로 퍼졌을 거고 큰 염증들만 남아있었을 거에요. 심장 여기저기 다 퍼져 있던거 제거했고, 인공판막 재건술도 마쳤습니다.

아빠 마취에서 조금 깨어나 헤롱헤롱할때 보러갔다. 고생했어, 수술 시켜서 미안해, 버텨줘서 고맙고, 얼른 회복해서 더 얘기하자. 아빠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2024.09.15 일요일. 아빠 수술 다음날.

원래 중환자실 면회날이 아니지만 특별히 면회를 시켜준다고 한다.

우리를 보자마자 아빠는 소리를 지른다

아악 아아악…! 이거이거 손잡아 손잡아. 여기여기!! 손잡아 손잡아!

처음엔 너무 고통스러워서 손 잡아달라는 건가 (아빠 답지 않지만) 싶어 손을 잡아 주었다. 왼쪽 손엔 커다란 장갑을 끼고 있었다. 알고보니 아빠가 계속 나가고 싶어하고 몸에 꼽아 둔 관들을 뽑으려 해서, 전화로 아줌마 동의를 받고 손을 결박해 둔 거였다. 아빠는 우리에게 장갑을 벗겨 달라 한 거였다. 중환자실에서 당장 나가고 싶어서.

아빠는 무통주사와 마약성 진통제에도 불구하고 너무 고통스러워했다. 아랫 입술과 윗 이빨에 핏자국이 선명했다. 고통스러운데 움직이지도 못하니 입술을 계속 깨문 탓이다. 간호사는 계속 닦아주는데도 계속 깨무셔서 핏자국이 남아있는 거라며, 그 자리에서 다시 닦아주셨다.

아빠가 소리지르며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 그리고 수술시킨 우리를, 나를 원망하는 듯한 눈빛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수술하기로 한거 잘한 선택일까 ... 나의 욕심으로 아빠를 괴롭히는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은것 같았다.


2024.09.16 월요일. 병문안.

중환자실 병문안은 월, 수, 금, 고작 10분 허락된다. 그 10 분을 아줌마, 나, 동생이 쪼개 써야 한다.

제발, 제발, 오늘은 어제보다 덜 고통스럽길.

아줌마가 먼저 들어가 나오질 않는다. 7분째에 나오신다. 원망스럽고 짜증난다. 짜증을 냈다. 이렇게 늦게 나오시면 어떡해요. 급히 들어갔다. 시간이 얼마 없다.

나: 아빠 어때? 어때..
아빠: 뭘 어때.. 이씨

아빠가 짜증낸다.

나: 아프지. 아빠 내가 수술 시켜서 미안해. 수술 동의해서 미안해. 나 용서해줘. 이젠 아빠 수술 안시킬게.

머릿속에 수백번 되뇌인 말을 쏟아내며 엉엉 울었다. 아빠가 누그러든다.

아빠: 왜.. 어..
나: 그러니까 얼른 회복하고 나와서 집 가자.
아빠: 그래 집 가자, 집 가자.
나: 현주도 봐야하니까 갈께.

동생은 인사만 하고 나와야 했다. 다음 병문안은 동생을 제일 먼저 들여보낼거다.

아랫입술과 윗이빨에 피가 안 묻어있어 다행이다. 소리지르지 않아서,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이 아니라 다행이다.


저녁에 아줌마와 대화를 나눴다.

한국 아빠들은 왜 병원을 도통 안가는가. 올해 건강검진 받은 것도 아줌마가 아빠를 닥달해서 그런거다. 올해 초 할머니(아빠의 엄마)가 아줌마 꿈에 나와 '상우 건강 빨리 챙겨!' 라고 하셨다고 한다. 아줌마는 미신이나 종교 따위의 것에 관심도 믿음도 없다. '할머니가 알려주신건가.. 아니면 그냥 내 불안이 꿈에 나타난걸 수도 있고.' 라며 중얼거리신다.

동생은 아빠 암 진단받기 며칠 전 윗니 8개가 우수수 빠지는 꿈을 꿨다고 한다. 치과의사 선생님의 "괜찮아요~ 하나씩 다시 넣으면 돼요" 라는 말을 들으며 꿈에서 깻다고. 신기하게도 윗니가 빠지는건 윗쪽 가족이 아플거란 꿈이라 한다. 하나씩 고치면 된다고 했으니, 많은 역경이 있겠지만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 된다는 꿈일걸까.


할머니가 아빠를 지켜주고 있다고, 하나씩 고쳐 나가면 될 거라 믿고 싶다.


2024.09.18 수요일. 면회.

머리가 멍- 하고 속이 우글거린다.

남자친구가 찍어준 사진을 보여주며 프사로 할건데 어떻냐고 묻는 동생이 짜증난다. 아침에 화장 다 하고 눈썹칼 있냐고 묻는 것도 거슬린다. 있는대로 예민해진 우리는 별거 아닌걸로 중환자실 대기실에서 싸웠다.

아빠를 보러 들어갔다.

오늘은 앉아있다. 살짝 짜증난 얼굴이지만 고통으로 일그러지진 않았다. 말도 더 잘한다. 여전히 집에 가겠다 난리다. 그제는 짜증만 냈다면 오늘은 간호사님께 말도 건다: '저기요.. 병실에서 어떻게 안되나요?' 간호사님은 친절하게 오늘은 추석연휴 때문에 일반병실에 인력이 부족해서 안되고 내일 일반병실로 옮겨 주겠다고 한다.

아빠는 일반병실 말고 집 가겠다 한다. 뭐라 해야할지 모르겠다. 집에선 우리가 아빠를 돌봐줄 수가 없어.

중환자실은 사람을 살리면서도 가장 잔인한 곳 같다.

이 일기가 오래 오래 계속 됐으면 좋겠다.


2024.09.20 금요일.

심장 염증이 피를 타고 돌아다니며 뇌경색을 일으켰을 수도 있고, 빈혈 수치가 좋아지지 않던 것, 폐부종도.. 이게 그 많은 문제의 근원지였구나, 퍼즐이 맞춰졌다.

하루가 일주일 같다. 이 모든게 시작된지 두 달이 채 안됐다는게 믿기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의지를 하고 싶으면서도 연락을 하고 이 힘든 말을 꺼내는 것이 무척 버겹다. 앞으로 견뎌내야할 시간이 있기에 무너지면 안된다. 누군가에게 털어 놓는 순간 약해질까 무서워 받은 연락에도 답을 못 못한다.


2024.09.27

간에 암이 많이 퍼졌다. 아빠 얼굴과 눈이 노랗다.


아빠에게 물었다.

나: 우리 유학 시키고 비싼 학교 보내서 아이구 내가 얘네때문에 참 고생한다 생각했었지 솔직히?

형편에 과분한 자식 교육에 참 치열하게 산 아빠는 한 순간의 지체도 없이 답한다.

아빠: 아니 단 한번도.


나: 아빠는 나 처음 외국 보냈을 때 계속 외국에 있을거라 생각했어, 아님 한국으로 돌아올 거리고 생각했어?
아빠: 한국에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어
나: 그래?? 근데 안왔네. 히히 쏘리. 아빠는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살거야, 아님 외국에서 살거야?
아빠: 외국에서 살거야. 한국은 (절래절래)



종종, 아니 자주 아빠는 나에게 어떤 말을 하려다 실어증 때문에 엉뚱한 단어를 내뱉는다. 알아들을 수가 없는데 아빠가 '내 말 알겠지?' 라는 표정을 지을때면 마음이 철렁 한다.


전에 삽입했던 담관 스텐트에 염증이 차 제거하고, 폐에 물이 차 숨 쉬기 힘들어해 관을 꼽아 물을 빼고, 혈청, 나트륨, 간수치 내리는 주사, 그리고 기억도 안나는 많은 것들을 돌려 가며 맞는다.

이런건 백발에 주름 자글자글한 할아버지가 겪는거라 생각했는데.
아빠 얼굴은 나 공항 마중 나왔을 그 때 그대로 인데.

2024.09.30

오늘의 진단서

질병명한국 표준질병 분류번호
급성 감염성 심내막염I33.0
췌장 두부암C25.0
중증의 승모판 역류I34.0
중증의 대동맥(판) 역류I35.1
폐부종을 동반한 울혈성 심부전I50.a
뇌졸중I64
급성 폐부종J81

신장이 망가져 온 몸이 퉁퉁 부었다. 투석 하러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맞는건지 모르겠다. 안 가고 그냥 나랑 같이 있으면 좋겠다. 중환자실 끔찍히 싫어하는 아빠가 가겠다고 한다. 살고 싶은가봐. 마음이 찢어진다.

October

2024.10.01

중환자실 면회

나; 아빠 너무 고생이지… 고마워..
아빠: 응.. 걱정하지 마. 내 걱정하지 마.
나: 아빠도 나랑 현주 걱정하지 마. 아빠는 최고의 아빠야. 만약 환생이란게 있으면 다시 태어나도 내 아빠 해줘.

아빠 앞에선 안 울고 싶었는데 펑펑 울어 버렸다.


담당 교수님이 아빠 이번 주 넘기기 힘들 것 같다고 한다.

아빠는 병원 말고 집에서 마지막을 보내고 싶어했다.

지금 투석기를 때어내면 그 순간부터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가정 호스피스와 입원 호스피스 여기저기 예약을 걸어놨지만 대기가 길다.

너무 늦었나 싶다.

아빠 영정사진을 고르고 아빠를 모실 만한 납골당을 방문해 보았다.

202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