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텀진공.. 공
베를린 오기 전, 아빠 친구분과 통화를 했어. 천주교 신자시라고 들었어.
그가 나에게 종교가 있냐고 물었어. 아니요, 라고 했지.
그러자 나에게 마음 끌리는 종교가 하나 있다면 -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뭐든 상관없으니 -
하나 골라 아빠를 위한 기도를 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셨어. 그게 아빠에게도, 나에게도 좋을 거라며.
나는 네, 그럴게요, 라고 했어.
며칠 뒤,
"낮이 안녕하기를 그리고 밤이 안녕하기를, 낮과 밤 그 사이도 행복하기를."
이라는 구절을 우연히 마주했어.
나의 사람들과 나 자신에게 바랄 수 있는 가히 모든 것이라 생각했어.
그리고 출처인 틱낫한 기도의 힘 이라는 책을 읽었지.
마음은 에너지라고, 바람과 태양의 에너지와 같은 에너지라고 했어.
기도라는 건 어떤 존재 - 하나님, 부처님 - 에게 어떤 일을 일어나게 해달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고 진실된 마음의 에너지를 세상에 더하는 것 이라 했어.
불교에서 너와 나는, 나와 세상은, 곧 하나라지. 🙏🏻
그래서 이 마음의 에너지가 세상에 더해지면 너와 내가 변하는 거라 했어.
태양 에너지가 지구를 따듯하게 하고 생명을 키우듯 말이야.
과거와 현재, 미래 모두 하나이기에, 시공간 상관없이 닿아 세상을 바꾼다고 했어.
과거와 현재의 아빠와 나를 위해 기도를 했어.
떠오르는 몇 사람의 안녕을 위한 기도도.
공
한 가지 신기한 것을 배웠어. 텅 빈 공간은 사실 가득 차 있데.
고전 물리학에서 진공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지만
양자역학이 보여주기를, 진공은 끊임없이 요동치는 것이래.
절대영도(0K) 에서 조차 에너지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제로포인트 라는 양의 에너지로 채워져 있다는 거야.
또 입자와 반입자가 짝을 이뤄 만들어지는 가상 입자(Virtual Particle) 라는 게 계속 찰나처럼 나타났다 사라진데.
우주의 가장 차갑고 정적인 공간도 고요하지만은 않은거야.
불교의 공(空) 이란 산스트리트어 비어있음(Śūnyatā)을 번역한 것인데,
이 비어있음은 무(無)가 아니라
모든 존재는 인연 지어 생겨난다는 말이래.
("연기(緣起)" - 인연 연, 일어날 기).
지금 우린 부모님께 받은 유전자 뿐만 아니라
이제껏 보고, 듣고, 느끼고, 스쳐오고 또 스며든,
이 모든 우연과 필연과 인연의 순간으로 만들어졌어.
그러기에 불교는 우리 각자와 세상은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말해.
우리 모두 인연 지어 만들어졌으니까.
The one who bows and the one who is bowed to are both, by nature, empty. But “empty” (sunyata in Sanskrit) doesn't mean that nothing is there. Empty means, 'Does not have a separate reality.' - The Energy of Prayer, Thich Nhat Hanh
아무것도 없으나, 동시에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무한한 잠재성의 장소.
비어 있기에 모든 것을 품는 것.
과학의 진공과 불교의 공에서 묘한 닮음을 찾아.
부처님오신날
모든 것은 영원하다 - 과거, 현재, 미래는 동일하게 존재한다 - 라는 물리학적 관점이
나의 상실을 상쇄시키라 생각했어.
그치만 모든 것은 다만 변화하고 사라지는 것이라면, 과거의 불변함이 무슨 의미란 걸까?
과거가 그의 지표에 영원하다 할지언들,
나 조차 끝없는 인과관계 속 매 순간 변화하는 존재라면,
지금 이 순간 말고 진실된 것이 있을까.
5월 5일 어린이날이자 음력 4월 8일. 부처님 오신날. 그리고 아빠 생일.
아빠 사진 앞에 독일 빵집 케이크 한 조각 두고 베를린 맥주 한 잔 따랐어.
마음속 묵혀둔 몇 마디 건네고
아쉬워 몇 마디 덧댔어.
아마 내가 마지막으로 기념하는 아빠의 생일일 거라고,
이제 보내주고, 앞으론 현재에 충실히 살아갈 거라 했어.
그도 나의 다짐에 동의할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
(앞으로 수십 번 반복할 다짐일것 같긴 하지만)
그 후 내 안의 어린아이를 위해 케이크를 뇸뇸 하고
으른 지혜를 위해 맥주를 마셨지.
그림
뭔가에 홀린 듯 차콜과 지우개를 사서
손 가는 대로 지워냈어.
지금은 다만 낙서지만 언젠간 더 멋진 게 만들어질 지도..?!

나의 검게 칠해진 종이는 무한한 가능성을 담은 공.
그 곳에서 덜어내어 존재를 만들어내.
이 어두움에서 따듯함을 만들어 내고 싶다. (˶˙ᵕ˙˶)
무거움과 가벼움
요즘 나는 북적이는 사람 사는 에너지가 조금 버거워
Hermit 에너지를 가득 끼얹고 고요히 하루하루 두둥실 떠다녔어.
요런 저런 생각을 하다, 베를린에 있는 불교센터에 한번 놀러가봤어.
그날의 주제는 '(우린) 왜 불자가 되는가' 였어.
싯다르타의 이야기로 시작했어.
늙음, 병듦, 죽음을 목격하고, 삶의 고통에서 해방을 위해 수행했던 그였지.
우리 역시 이런 고통과 죽음의 직, 간접적 경험이 트리거가 되어
더 깊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수행한다.. 고 했어.
불교, 아니 어떠한 종교의 레이블도 떠안을 생각 없지만
다들 아픔과 상실을 겪는구나, 라는 당연한 슬픈 사실이 꽤나 위로가 되었어.
불교의 화엄경에선 인드라망 이라는 비유로 이 세계를 설명해.

끝 없이 이어지는 그물망에 보석이 매듭마다 박혀있어. 하나의 보석이 반짝이면 다른 모든 보석을 비추고, 모든 보석이 서로를 비추며 반짝여. 이처럼 우주의 모든 것은 서로를 비추며 존재 한다는 거야.
이 연결망에서 모든 건 존재하며 서로를 존재하게도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건 지금의 반짝임 뿐 이라는거.
이 것이 지금 내게 필요했던 지혜이지 않았을까.
어쩌면 아주 어쩌면
불자는 아니지만 절은 참 좋아하던 아빠가 나를 여기로 인도한건 아닐까.
때론 삶은 무거워.
과거가 위로가 될 때가 있지만 짓누르기도 해.
이전에 누가 그랬지, 우린 청춘 보석이라고.
속으로 오글거리다 생각했지만 사실 너 되게 지혜로운 아이었을지도
반짝임은 한 없이 가벼우니까
한바탕 꿈 같은 삶 재미진거 하면서
서로를 빛내며 가볍게 살아가자구우
지금까지 불교에 힐끗하는 과학하는 보석 나부랭이 였습니다
그럼 이만